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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9일 MUSIC & LITERATURE에 실린,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Ágota Kristóf의 인터뷰를 번역한 글입니다. 그녀의 대표적 3부작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합본으로 한국에서 출판되었지만, 이 번역문은 각각의 원제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 역자

1999년 6월, 피사 대학에서 시인 발레리오 마그렐리Valerio Magrelli 지도로 프랑스 문학에 관한 논문을 쓰던 리카르도 베네데티니Riccardo Benedettini는 위대한 헝가리 망명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Ágota Kristóf를 인터뷰하려고 스위스를 여행했다. 이 대화는 영어로 읽을 수 있는 현재 몇 안 되는 크리스토프의 인터뷰이다.

크리스토프는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쓰지 않고, 21세에 스위스에 이민 간 뒤 힘들게 배운 프랑스어를 썼다. 내게 이 인터뷰를 전달한 마그렐리가 말했듯이, “크리스토프는 새로운 종류의 프랑스어를 발명”했다. 형식적 실험을 위해 언어와 거리를 유지했던 베케트Beckett와는 달리, 그녀는 예술적 열망으로 프랑스어를 실험하지는 않았다. 살아남으려고, 이해받으려고, 가벼운 마음에서가 아니라 사력을 다해 정확함을 추구했다.—그리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크리스토프는 갓 난 딸과 남편, 기저귀가 든 가방 하나와 사전이 든 가방 하나를 들고 어두운 밤을 틈타, 걸어서 헝가리를 탈출했다. 스위스에 정착하기 전에 일가족은 오스트리아에 도착하고, 크리스토프는 시계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동료 노동자 중 많은 사람이 망명자였는데, 대화는 엄격히 금지되었다. 공장 밖에서 크리스토프는 프랑스어를 잘 몰라서 벙어리나 마찬가지였고, 프랑스어를 배운 뒤에도 몇 년간은 사실상 문맹이었다. 스위스로 망명한 헝가리인 친구 네 명은 도착한 뒤 곧 자살했다. 크리스토프의 회고록인 문맹The Illiterate은 이 모든 사건을 기술하는데, 문학 장르 중 하나인 회고록에서의 가장 절도 있고 간결한 사례 중 하나이다; 단지 44페이지에, 어린 시절부터 크리스토프의 인생을 낯설고 개인적이며 기묘한 음조로 표현한다.

윌 헤이워드Will Heyward가 처음 번역한 이 놀라운 인터뷰에서 크리스토프는, 그녀의 3부작, 노트북The Notebook, 증거The Proof, 그리고 세 번째 거짓말The Third Lie을 쓰도록 이끈 잔인한 결핍과 공허를 연상시키는, 단순하되 대단히 직접적인 어구로 대답한다. 그런 불안정한 인물이나 도착적인 장면을 왜, 어떻게 창조했는지 묻자, 그런 사람을 알고 그런 장면을 보았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단지 실제 그랬던 것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녀의 일대기에서 크게 강조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소설을 창작하는지가 강조된다. 설령 “모르겠다”라고 대답할 때도 그녀는 뭔가를 드러내고 있다. 크리스토프는 쓴다. 그것이 그녀의 대답이다. 글을 쓰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며, 즐기는 것이며, 삶의 수많은 고통에서 위안받는 것이다. 증거에 등장하는 루카스가 말하듯 “슬픈 이야기는 많지만, 인생만큼 슬픈 이야기는 없다.”

—미크 츄Mieke Chew, 2016년 5월, 뉴욕

The Notebook Trilogy (The Notebook, The Proof, The Third Lie)
by Ágota Kristóf
tr. Alan Sheridan, David Watson, Marc Romano
(Grove Press, 1997; CB Editions, 2014; Text Publishing, 2016)

리카르도 베네데티니: 작가님은 소설을 통해 많은 성공을 거두었으며 토마스 베른하르트, 베케트, 카프카와 자주 비교됩니다. 오해되거나 소홀히 다루어졌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아고타 크리스토프: 베른하르트를 이야기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그를 그저 사랑하기 때문이죠[웃음].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저와 마거리트 듀라를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탐탁지 않습니다. 저는 듀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해된 부분은, 음…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RB: 작가님의 책은 20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AK: [중지] 아니… 30개 이상.

RB: 미안합니다, 30개.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큰 명성을 얻었다고 생각하십니까?

AK: 아, 처음에는 놀라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출판된 지 10년 넘게 지난 뒤에도 여전히 팔린다는 점입니다. 믿기지 않습니다. 노트북은 꽤 많이 팔립니다. 종종 각색 요청도 받습니다.

RB: 저도 들었습니다. 영화 각색은 끝났습니까?

AK: 아직 아니지만, 판권은 팔렸습니다. 제작자는 미국 사람인데 촬영은 덴마크 사람이 할 것 같습니다. 서점이 위치한 호텔을 마주 보는 쾨세그Kőszeg 중심부에 촬영장이 세워질 겁니다. 쾨세그에 가시면 분명 둘 다 볼 수 있을 겁니다. 노트북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집으로 사용할 건물은 벌써 다른 영화 몇 편에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책 예스터데이 때문에 이탈리아 사람 몇 명이 그 영화의 판권을 샀습니다.

RB: 작가님의 텍스트는 자주 문학 비평의 주제가 됩니다. 작품에서 비평가들이 특히 주목하기를 바라는 측면은 무엇입니까?

AK: 모르겠습니다. 저한테는 다 똑같습니다.

RB: 작가님의 책에서 얻을 만한 메시지가 있습니까?

AK: 물론 없습니다. 저는 메시지를 원치 않습니다. 없습니다[웃음], 전혀 없습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쓰지 않습니다. 저는 조금이나마 제 인생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일입니다. 노트북에서 그리고 싶은 것은 저의 어린 시절입니다. 오빠 예노Jenő와 함께 직접 본 것입니다. 순전히 전기입니다.

RB: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습니까?

AK: 분명 많이 진화했습니다. 13살에 때 글쓰기를 시작했고 그 뒤로 제 스타일의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모든 것이요. 저에게 시는 너무 시적이고 감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식의 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제 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RB: 자신이 작가라는 것을 언제 알았습니까?

AK: 정말로 항상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러시아 작가를 많이 읽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했습니다. 아마 제일 좋아하는 작가일 겁니다. 탐정 소설도 많이 읽었습니다.

RB: 자신만의 창작 과정을 말해 줄 수 있습니까?

AK: 솔직히 말하면, 모릅니다. 프랑스어로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20대에 여기에 막 왔을 때, 헝가리어로 시를 썼습니다. 그런 다음 프랑스어를 배우고 프랑스어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예, 조금은, 즐거워지려고 시작했습니다. 그 뒤 연극 애호가와 감독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희곡을 쓰기 시작했고 연극과 학생들과도 많이 일했습니다. 상당수가 편집을 거치지 않았지만, 라디오 방송으로 많이 공연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RB: 연극의 대사와 노트북의 대사 간에 연결 고리가 있습니까?

AK: 단연코 있습니다.

RB: 소설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K: 음… 너무 심각하고, 슬픕니다. 예, 아주 슬프군요.

RB: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작가는 누구입니까?

AK: 크누트 함순과 몇몇 다른 작가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름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편집자가 제 작품과 많이 닮았다며 그의 작품을 줬습니다. 예, 그 소설은 아주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제 작품과 닮은 점은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많이는 읽지 않습니다. 프랜시스 퐁주Francis Ponge와 조르주 바타유George Bataille를 좋아하지만, 동시대 작가를 많이 알지 못합니다.

RB: 자신이 헝가리 문학, 프랑스-스위스 문학의 대변인처럼 느껴집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무국적자라고 생각하십니까?

AK: 프랑스어로 쓰지만, 헝가리 사람입니다. 제 모든 책은 헝가리에 관한 책입니다. 저의 네 번째 작품도 읽었습니까?

RB: 예스터데이?

AK: 예. 이곳 스위스에 정착했지만, 난민 지역입니다. 그것은 다소간 진실입니다. 상당히 자전적입니다. 저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공장은 네 번째 마을에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우리는 첫 번째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예스터데이에 등장하는 라인Line은 첫 번째 마을에서 버스를 타는 저입니다. 제 전남편은 학위가 있었습니다. 역시 공장에서 일하는 산도르Sandor라는 인물은 집시입니다. 우리는 같이 일했습니다. 제 첫 딸은 모든 것을 알아챘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묘사한 아파트. 예, 이 작품은 제 작품 중에 제일 자전적입니다. 자살은 물론, 제가 묘사한 모든 것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저는 헝가리에서 망명한 뒤 자살한 사람을 네 명 알았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지 그것뿐입니다.

RB: 헝가리를 떠난 정확한 날짜를 알고 싶습니다.

AK: 1956년, 혁명 뒤였습니다.

RB: 예, 하지만 정확한 날짜를 알고 싶습니다.

AK: 10월 27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니, 11월 27일입니다.

RB: 11월 27일?

AK: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밤늦게 떠났습니다. 어떤 그룹에 속해 있었습니다. 한 마을에 도착했는데 이미 난민으로 가득 찼습니다. 곧 그들은 우리를 보살폈습니다. 그룹은 대부분 어린이였습니다. 식량과 피난처를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농부들의 집에서 우리는 환영받았습니다. 며칠 동안 거기에 머물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뒤, 마을 시장은 빈Vienna 행 버스표를 사주었습니다. 나중에, 갚았습니다. 빈에서는 막사에 머물렀습니다.

RB: 스위스에 가려고 계획하지 않았습니까? 캐나다를 선호했다고 읽었습니다. 맞습니까?

AK: 아니, 아닙니다. 캐나다는 절대 아닙니다. 가족이 미국에 있어서 미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거기 도착했을 때 6개월밖에 머무를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 뒤 스위스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남편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역사 교사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정말로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 가족에게는 아파트를, 저에게는 일자리를, 아기에게는 보육원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기다려야 했습니다. 제 자녀들이 이곳 스위스에 있어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싶지는 않습니다.

RB: 헝가리로 처음 돌아온 것은 언제입니까?

Ágota Kristóf

AK: 1968년에 제가 떠난 지 12년이 지난 뒤에도 부모님과 형제들은 헝가리에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 형제들과 조카들만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작은 마을에 살지는 않습니다. 작가인 동생 아틸라Attila는 부다페스트에서 삽니다. 저는 종종 헝가리로 갑니다.

RB: 헝가리를 떠났을 때, 여전히 자신이 정권을 유지한 사람들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AK: 저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떠나자고 한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저와는 달리 남편은 정치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만약 계속 머물렀다면 남편은 확실히 감옥에 갇혔을 것입니다. 남편의 친구들이 2년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어쨌든 2년은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RB: 하지만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노트북에 등장하는, 남편이 처형된 과부 클라라를 보면 정권이 부당하다는 확신이 듭니다.

AK: 예, 클라라는 제 어머니입니다. 그 이야기는 어머니가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클라라처럼, 충격으로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정권이 사람들을 찍어낸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유고슬라비아 사람들과 접촉한 이들은 모두 반역자였습니다.

RB: 스위스에 도착했을 때 힘든 일이 많았습니까?

AK: 많았습니다. 5년 동안 저는 읽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금지된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러시아어만 알았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수학을 가르쳤지만, 전쟁터에 징집되기 전에는 모든 것을 가르쳤습니다. 마을의 유일한 교사였습니다. 남편은 저보다 꽤 나이가 많아서 프랑스어를 조금 했습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충분했습니다. 남편이 학교에 다닐 때는, 여전히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가르쳤지만, 그 뒤에는 러시아어만 가르쳤습니다. 저는 대학을 다녔지만, 외국인들을 위한 과정만 수강했습니다. 심지어 여기에도 학사 학위는 있어야 했습니다.

RB: 여전히 헝가리어로 썼습니까?

AK: 아닙니다, 말하기는 완벽했지만, 편지나 엽서를 쓸 때 종종 실수했습니다. 예를 들어, 묵음 “e”를 넣는 등, 자주 틀립니다.

RB: 소설은 개인과 그 주변 세계의 양립 불가능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정의에 동의하십니까?

AK: 모릅니다. 저는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RB: “3부작trilogy”. 소설의 번역 제목으로 이 단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K: 예. 세 작품 모두 같은 사람이 나와서 그 단어는 동의합니다. 그래서 세 작품 모두 서로 어울립니다.

RB: 전쟁은 분명히 작가님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과 작가님과의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AK: 전쟁은 저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관해서 쓴 글이 있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저는 열 살이었고, 저에게는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첫 번째 소설에서 하는 이야기는 1944년에 시작됩니다. 당시 우리는 지난 1년을 거기에서 보냈습니다. 전선이 가까워져서, 계속 더 가까워져서, 지난 1년은 가장 어려웠고 또 가장 위험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을은 폭격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주 조금 받았습니다. 파괴된 집이 많지 않았습니다. 경보가 많이 울리고 그동안 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학교에는 학생을 위한 책상이 하나도 없었고, 설령 있었다 해도, 가고 싶은 사람도 갈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RB: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인 시간과 장소의 인식을 추구하는 것이 작가님의 작품들을 읽는 사실적인 방법이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AK: 예, 저의 모든 삶, 모든 감정, 제가 돌아온 이 마을이 우선입니다.

RB: 하지만 분위기는 시간과 관련이 없습니다. 왜 그런 시공간의 모호함이 존재합니까?

AK: 각본을 쓸 때도 그렇고, 저는 항상 그런 식으로 씁니다. 제가 쓴 각본을 읽어 보셨습니까?

RB: 예, 물론입니다. 예를 들면, 라 루트La Route.

AK: 예[웃음]… 하지만 편집을 거치거나 출판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구했습니까?

RB: 편집자가 사본을 보냈습니다.

AK: 아, 예, 제가 편집자에게 사본을 보낸 지도 오래됐군요.

RB: 그래서, 세 번째 거짓말에서 묘사된 S 마을을 쾨세그 옆 솜버트헤이Szombathely라고 생각해도 됩니까?

AK: 예, 정확합니다.

RB: 우화에 관련된 책도 읽으십니까?

AK: 예, 우화에 관해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저한테는 모두 똑같습니다.

RB: 두 쌍둥이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풀기 힘든 정체성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왜 단순히 형제와 자매가 아닌 쌍둥이입니까?

AK: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빠와 저에 관해 썼지만, 썩 잘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용했습니다.

RB: 쌍둥이의 몇 안 되는 소유물은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성경, 아버지의 사전, 큰 노트북이 생각납니다.

AK: 살아가면서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첫 독서의 대상은 성경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면 그것은 성경입니다. 여기 도착했을 때 프랑스어를 전혀 몰라서 사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항상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 저는 사전을 정말 좋아합니다; 헝가리어 사전도 많이 봅니다. 그리고 제가 고등학교 때 헝가리어로 일기를 썼기 때문에 큰 노트북도 필수입니다. 학교 다닐 때 저만의 글 쓰는 법을 고안했는데, 이제는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습니다.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RB: 쌍둥이들처럼, 형제들과 특별한 자신만의 학습 방식을 따랐습니까?

AK: 사실 학습은 아니고 훈련을 했습니다. 이틀 동안 먹지 않기, 움직이지 않기, 한 시간 동안 말하지 않기. 잔인성을 훈련한 것은 부모님 두 분 다 동물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음, 아버지는 동물을 죽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닭은 항상 오빠가 죽였습니다. 저는… 아니, 못해요. 우리도 고양이 목을 매달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일은 항상 오빠가 했습니다. 지켜보기 힘들었습니다. 고양이가 너무 길게 늘어져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줄을 풀었습니다.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도망갔습니다. 오빠에게 우리의 어린 시절을 쓴다고 말했을 때, 오빠는 말했습니다, “고양이를 잊지 마.”

RB: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도 고양이를 목매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도 카라마조프의 형제일 겁니다.

AK: 진짜입니까?

RB: 예, 그렇지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다른 인물에 관해 잠깐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에는 재현과 현실 사이에 두드러진 이중성이 있습니다. 가령 사과가 나오는 장면에서1 할머니라는 인물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AK: 할머니라는 인물은 가공이지만, 한 일은 허구가 아닙니다. 정원이며, 닭이며, 이 분이 바로 제 어머니입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늙은 농부들도 보았습니다. 정말 남루했습니다. 예, 그런 여자들이 많았습니다. 사과를 들고, 예, 할머니는 기꺼이 그렇게 합니다.

RB: 할머니와 현저하게 대조되는 인물로 가정부가 생각납니다. 타인의 대소사에 무관심한 사람의 상징입니다. 쌍둥이에게는 친절하지만, 마을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하는 동안 불필요하게 잔인한 모습을 드러냅니다.2

AK: 하지만, 아시다시피, 사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떤 마을에 살았는데 정말로 유대인을 추방했습니다. 여성들, 노인들, 아이들이 긴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오스트리아인 유모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지나갈 때 빵을 꺼냈다가 도로 집어넣었습니다. 우리 마을에 유대인을 수송하는 캠프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 장소에는 기념비도 있습니다. 보셨습니까?

RB: 아뇨, 불행히도. 예스터데이에 등장하는 라인은 순수한 사랑과 가장 잔인하고 가치 없는 인종 차별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진심으로, 이것이 합쳐져서 등장인물들을 지탱합니까? 겉모습과 현실, 거짓과 진실 사이의 대조 속에서?

AK: 예, 맞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선하지도 전적으로 악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RB: 노트북은 자아와 자유를 찾는 소설입니다. 쌍둥이가 살아남으려면 강한 유대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또한 자율적인 삶을 살려면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맞습니까?

AK: 예.

RB: 세 번째 거짓말에서 두 형제의 완전한 재회가 불가능한 것도 그래서입니까?

AK: 예, 클라우스는 혼자 삽니다. 그는 습관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형제를 질투합니다.

RB: 작가님의 작품에서 사랑은 부차적이지만, 섹스는, 종종 온갖 폭력적인 방식으로, 계속 등장합니다.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등장인물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랑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왜입니까?

AK: 전적으로 맞습니다. 어린 시절에 많이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습니다. 바로 제가 태어난 헝가리의 치크반트Csikvánd에서입니다. 동물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다 알았습니다. 제 생각에 어린 시절에는 섹스가 아주 커 보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전쟁 중에는 비밀이 훨씬 더 적고, 강간이 빈번하게 자행됩니다.

RB: 동성애자에 마조히스트인 외국인 장교를 어떻게 생각해 내셨습니까?

AK: 장교는 정말 존재했습니다. 우리 아파트에 있었습니다. 방은 세 개가 있었고, 그중 한 방에는 별도의 출입구가 있어서 전쟁 중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헝가리 사람들, 그다음은 독일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하지만 그 장교가 소아성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지만 대중에게 충격을 주려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혀요. 만약 제가 그것을 포함하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바람대로, 심지어 어린이도 말이죠. 이런 디테일 때문에 많은 사람이 책을 읽지 못했고, 그 점은 후회합니다.

RB: 하지만 장교는 그들을 좋아했습니까?

AK: 예, 맞습니다, 좋아했습니다.

RB: 어쨌든, 근친상간이 만연합니다. 예스터데이에 등장하는 산도르는, 완벽한 결혼은 파라오처럼 형제자매 간에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쌍둥이가 자위하거나, 둘이서 명백하게 선정적으로 노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AK: 모르겠습니다.

RB: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육체적으로 가장 친밀한데도, 절대 서로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은 이상합니다. 왜 그들은 항상 타인의 성적인 행동을 지켜보는 사람으로 비칠까요? 그들이 하인이나 장교와 성관계를 할 때도, 마치 행동의 이질감을 확인이라도 하듯 무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왜 행동하지 않는 걸까요?

AK: 무심합니다, 맞습니다.

RB: 크게 영향받은 작가들이 있습니까?

AK: 예, 제 책과 아주 비슷한 어떤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남자아이, 여자아이 이야기였습니다. 노트북처럼 거친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편집자에게 무슨 조치를 할지 물었고, 그런 공을 들일 한 가치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어쨌든 그 책은 잘 되지 못했습니다. 예, 제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 같군요[웃음].

RB: 사실 저는 반대로 물어보았습니다.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글쎄… 주제를 바꾸시죠. 노트북에 등장하는 언청이Harelip3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는 사람입니까, 순전한 창작입니까?

AK: 아, 아닙니다, 실제 인물입니다. 쾨세그에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최악의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습니다. 그녀는 코가 없었습니다. 떨어져서 부러졌습니다. 치료하지 않아서 내려앉았습니다. 마을의 모든 남자와 잤습니다. 그녀는 엄청나게 멋진 자녀가 둘 있었는데, 셋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들은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동생이 쓴 책에도 그녀 이야기가 나옵니다. 똑같은 시기를 썼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동생은 암살에 관해 썼습니다. 제 소설에서 암살이 나옵니까?

RB: 많습니다…

AK: 예, 맞습니다. 하지만… 여자를 암살하는 것도 기억납니까?

RB: 아, 증거에 등장하는 불면증 환자의 아내가 암살당했습니다…

AK: 예, 그렇군요. 불면증 환자의 아내.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집에서 살해당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 아주 가까이서 살았습니다. 제 동생이 그것을 구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썼습니다. 그녀는 마을에 자기 소유의 공장이 3개 있었기 때문에 살해당했습니다. 더구나 그녀는 외국인이었고 정부는 외국인 공장을 국유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죽었습니다. 제 동생이 이 이야기를 소설로 썼습니다. 동생은 모든 것을 살펴보고, 조사했습니다. 기록물이 보관된 경찰서에도 갔습니다.

RB: 그리고 불면증 환자.

AK: 그 불면증 환자는, 쾨세그가 아니라 여기 뇌샤텔Neuchatel에 살았습니다. 맞은편에 사는 이웃이었습니다. 밤새도록 창문 앞에 앉아 있는 여자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물었습니다. “지금 몇 시예요? 지금 몇 시예요?”하고 묻고는 했습니다. 발코니에 있는 저에게도 말을 걸려고 했습니다.

RB: 언청이라는 인물로 돌아가면, 저는 그녀의 죽음을 역설적으로 행복한 죽음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4

AK: 언청이의 죽음은, 예, 행복한 죽음입니다.

RB: 가끔 죽음을 생각하십니까?

AK: 항상 생각합니다. 두렵습니다. 두려운 것은, 심지어 죽음도 아니고, 늙고 병드는 것입니다. 물론, 죽음도 두렵습니다. 게다가 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RB: 작가의 작품에서의 작가의 등장. 증거에 등장하는 빅토르의 이야기는 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합니까?

AK: 여기 뇌샤텔에 친구가 있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였고, 지독하게 담배를 피웠습니다. 빅토르처럼 여동생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항상 글을 쓰고 싶어 했습니다. 저에게도 몇 편 줬습니다. 시였습니다. 매우 훌륭했지만, 그는 책 한 권을 쓸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여동생은 원고를 출판하려 했습니다. 그에 대한 또 다른 소설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후회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습니다.

RB: 작가님의 작품에는 몇 가지 종류의 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증거에서 마티아스의 꿈, 예스터데이에서 토마스의 꿈. 항상, 우아한 털의 퓨마나 호랑이 같은 동물이 나옵니다. 이러한 현상 이면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며, 무엇보다도, 의미는 무엇입니까?

AK: 대게, 진짜 저의 꿈입니다.

RB: 쌍둥이 아버지의 죽음? “학교” 장에서 두 아이는, 어떤 면에서, 이미 아버지를 전선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게 아버지가 폭탄으로 죽은 이유입니까?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다고 들었습니다.

AK: 제 아버지는 쾨세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제가 태어난 치크반트에서 교사였습니다. 그 마을에는 교장도 없었고, 학생들은 버스를 타고 인근 마을의 학교에 가야 했습니다. 기차역도 없었습니다. 예, 아버지는 매우 엄격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전쟁터에 갔을 때 행복했습니다, 훨씬 더 좋았죠[웃음]. 예, 쌍둥이들이 아버지를 전선으로 보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의도한 바입니다.

RB: 요즘 스위스에서 어떻게 지내십니까?

AK: 저는 충분히 벌었습니다… 이제는 일하지 않습니다.

RB: 예, 맞습니다. 하지만 재정 상태를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사는 것은 어떻고 스위스 사람들하고의 관계는 어떤지 말씀드렸습니다.

AK: 친구가 몇 명 있고, 외출은 거의 안 하고, 텔레비전 많이 보고, 신문 읽고, 책도 조금 읽습니다. 자녀들을 방문하고, 자녀들도 저를 방문합니다. 어린 손자들도 있습니다.

RB: “무인도” 게임을 잠깐 허락하신다면, 쓰신 책 중 단 한 권만 고를 수 있다면 무슨 책을 들고 무인도에 가겠습니까?

AK: 증거.

Ágota Kristóf

RB: 그런 여행을 하고 싶습니까?

AK: 아닙니다, 전혀. 저는 여행을 싫어합니다. 책 때문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지금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심지어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베오그라드에서도 초대받았습니다. 수락하지는 않았습니다.

RB: 인생에서 가장 미안한 부분은 무엇이고, 가장 그리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AK: 제 자녀들과 작품들입니다.

RB: 반면에, 즐겁게 잊어버리고 싶은 부분은 무엇입니까?

AK: 떠남. 그리고 또 결혼.

RB: 지금 어떤 작업을 하십니까?

AK: 아무것도. 저는 글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윌 헤이워드가 불어에서 영어로 번역


리카르도 베네데티니는 프랑스 문학 박사 학위가 있으며 베로나 대학교의 연구원이다. 이탈리아와 해외에서 출판된 여러 작품의 저자이기도 하다.

미크 츄Higher Arc 매거진의 창립 편집인이다. Sydney Review of Books, Music & Literature, BOMB Magazine 등 많은 출판물에 기고했다. New Directions에서 일한다.

윌 헤이워드는 뉴욕의 출판 편집인이다. The White Review, Music & Literature, BOMB Magazine, Vice, Stonecutter, The Australian 등 많은 출판물에 기고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5년 헝가리의 치크반트에서 태어나 1956년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 지역 언어인 프랑스어를 느리게 습득했다. 첫 번째 소설 노트북(1986)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속편 격인 증거(1988)와 세 번째 거짓말(1991)로 삼부작을 완성했다. 2004년 크리스토프는, 어린 시절과 1956년 헝가리 탈출, 난민으로서 새로운 언어 습득, 프랑스어라는 새로운 ‘외계’ 언어로 글쓰기 등을 다룬 회고록 문맹을 출판했다. 그녀는 희곡과 다른 소설들도 썼으며, 2011년에 사망했다.

  1. 노트북에서, 추방되는 유대인들이 할머니의 집 앞을 지나갈 때, 할머니가 “우연히” 앞치마에 가득 담긴 사과를 떨어뜨리자 한 병사가 개머리판으로 쳐서 할머니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할머니는 말한다. “하지만 그래도 몇 사람은 내 사과를 먹을 수 있었어!” 

  2. 할머니 장면은 이전 장의 가정부 장면과 거의 반대이다. 추방되는 유대인들이 가정부의 방 앞을 지나갈 때, 한 유대인이 손을 내밀어 빵을 구걸한다. “가정부는 미소를 지으며 남은 빵을 주는 척한다. 내민 손 가까이 빵을 가져가다가, 이내 크게 웃으며 도로 빵 조각을 입에 집어넣고 씹으며 말한다. ‘나도 배고파.’ 이 과정을 지켜본 한 병사가 가정부의 등을 살짝 두드린다; 가정부의 볼을 꼬집고, 가정부는 그를 향해 손수건을 흔든다. 

  3. “그녀는 언청이에 사팔뜨기이며, 코에는 콧물이 흐르고 눈가에는 누런 눈곱이 끼어 있다. 팔다리는 부스럼 투성이다. 그녀가 말한다. ‘사람들은 날 언청이라고 불러.’” 

  4. 언청이는 침략한 군인들, 아마도 러시아인들과 관계한 뒤 죽는데, 그들은 “수색”이라는 명목으로 마을 사람들의 집에서 물건을 훔치고 안에 있는 여자들을 강간한다. 쌍둥이들은 언청이가 집에서 죽은 것을 발견하고 언청이의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다. 그 여자가 대답한다. “저 애가 군인들을 불러들였어. 길가에 나가서 손을 흔들어 들어오라고 한 거야. 열둘인가 열다섯쯤이었어. 놈들이 차례로 덮칠 때, 저 애는 계속 소리를 질러댔어. ‘아. 좋아, 너무 좋아! 계속해, 다음 사람, 계속, 또 다음 사람!’ 저 애는 행복하게 죽었어, 죽을 때까지 섹스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