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0일 fictionwritersreview.com에 실린, 작가 앤드루 포터Andrew Porter의 인터뷰를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을 최대한 존중했으나, 일부 잘못된 링크를 고치고 스테파니 본과 로리 오스트런드의 책 사진 두 장을 뺐습니다. — 역자
작은 순간부터 시작하기: 앤드루 포터 인터뷰
앤드루 포터는 2007년 플래너리 오코너상Flannery O’Connor Short Fiction을 받은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을 썼고 최근 빈티지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다. 평단의 호평을 받은 포터의 작품은 겹겹으로 정교하게 감싸인 아름답게 진행되는 줄거리와 기꺼이 큰 소리로 읽고 싶은 사랑스러운 문장으로 가득하다. 이 인터뷰에서 포터는, 소설 쓰기가 영화 편집과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한다. 1인칭 관찰자가 누리는 독특한 이점이 바로 그것인데, 그래서 영화배우의 포터 작품 낭독이 “그토록 초현실적”인 것이다.
예전에 “잘 만든 이야기well-made story”를 나쁜 것처럼 말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기교적 완성은 정서적 결핍과 거의 동의어라고 했다. 정말로 위대하고 정말로 진실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지저분하고 과도해야 했다. 완벽하기 위해서는 결함 또한 있어야 했다.
예전부터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앤드루 포터의 데뷔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면에서 잘 만들어진 작품이며, 아름답게 진행되어 기꺼이 큰 소리로 읽고 싶은 사랑스러운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포터는 정서적 깊이나 이야기를 기교로 대신하지 않는다. 독자가 거의 예상하지 못할 때, 겉보기에 평온한 등장인물의 삶은 깨져서 속살을 드러낸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문자 그대로 또 비유적으로도, 구멍이 열린다. 겉모습은 거짓이었고 오해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포터의 작품은 예술적 오브제objets d’art가 아니라 겹겹으로 감싼 작은 상자이다. 겉보기에 아름다운 삶에서 숨겨진 놀라운 진실을 향해 우리를 더욱더 깊이 인도한다.
앤드루 포터는 2007년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받은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썼고 최근에 빈티지 랜덤 하우스 출판사에서 페이퍼백으로 재출간되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국외판은 영국과 호주에서도 출판되었으며 프랑스, 네덜란드, 한국에서 번역될 예정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상 외에도 포어워드 매거진Foreword Magazine 2008 ‘올해의 책’을 수상했고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상Frank O’Connor International Short Story Award 후보에 올랐으며 캔자스 시티 스타와 샌 안토니오 익스프레스 뉴스는 2008년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선정했다.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을 수료한 포터는 One Story, Epoch, The Pushcart Prith Anthology, NPR의 “Selected Shorts”에 단편을 발표했다. 현재 샌 안토니오 트리니티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나는 90년대 후반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 청소년 재능 센터에서 일할 때 그를 처음 만났다. 이 인터뷰는 2010년 5월에서 6월 사이에 이메일로 진행되었다.
인터뷰
매리 스튜어트 애트웰: Time Out New York에서 데이비드 레빈슨은 “송곳 같은 눈을 가진 구경꾼”이라고 당신을 칭했습니다. 스스로가 구경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작품의 대부분은 실제로 관찰한 데서 왔습니까?
앤드루 포터: 항상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한편으로 작품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은 완전히 허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줄거리와 인물을 구성하는 세부 사항은 허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는 사람들의 여러 특성을 구현한 등장인물이 있을 수 있고, 세부 삶은 제가 거주한 장소, 가진 직업, 들은 이야기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관찰과 상상력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서 그어야 하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상상력이 특정 인물을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인물을 구성하는 세부 사항과 성격은 관찰한 것에 뿌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단편집의 첫 번째 작품인 “구멍Hole”은 가장 친한 친구와 이웃이 뒤뜰의 버려진 하수구로 사라진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사건traumatic event을 기억하는 어떤 성인이 작품 속 화자로 등장합니다. 선형적인 시간 흐름으로 진행할 수 있었지만, 당신은 회고적인 방식을 선택했고 화자가 매번 다르게 이야기하도록 해서 신뢰성을 낮추었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는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구조를 어떻게 정했는지 이야기해 주십시오.
“구멍”을 쓰면서 저는 이것이 기억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마음이 기억을, 특히 충격적인 사건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가 되리라 일찍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비선형인 구조를 사용하고 싶었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사건 자체만큼이나 많은 화자 이야기를 원했습니다. 화자는 태도를 바꾸고 시간을 오가며 다른 각도에서 사건에 접근합니다. 적어도 제 경험에 끔찍한 사건을 기억할 때 사람은 대부분 그런 식입니다. 그리고 선형적으로 접근했다면 그런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애틀랜타 저널 컨스터튜션The Atlantic Journal-Constitution은 작가의 스타일이 모교인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단편 소설 전통과 많은 관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의 문학적 전통과 그곳에서의 경험은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적어도 작가로서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이오와에서의 2년은 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많은 작품을 썼거나 수준이 높아져서가 아닙니다. 글쓰기에 심각할 정도로 진지한, 좋은 작품을 쓰려고 극도로 노력하는,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어서가 아닌지 생각합니다. 이전에 진지한 작가들과 그렇게 많이 함께한 적은 없었고 그것에 아주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프로그램의 전통을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아주 잘 알았고 때로는 걱정하기도 했지만 아마도 덕분에 더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아이오와는 어떤 작가들을 읽도록 권합니까? 작가들에게 어떤 교훈을 배우셨나요?
특정 작가를 읽도록 장려한 교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료와 대화를 통해 많은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이오와에 도착하기 전에 저도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읽은 책 목록을 알고 부끄러웠습니다. 어쨌든 자주, 많이 언급되는 작가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갓 등장한 주노 디아즈와 같은 젊은 작가들과 네이선 잉글랜더, 크리스 에이드리언, 줄리 오린저처럼 당시에 갓 졸업한 사람들이었는데, 모두 단편집을 막 출판했죠. 당시에는 젊은 날의 성공에 꽤 열광했습니다. 문예 창작 석사MFA 프로그램에서 아마도 흔한 일일 겁니다.
당신을 가르친 배리 한나는 당신의 작품을 극찬했습니다. 함께 작업하기에 어땠습니까? 선생님과 작가로서 그분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배리는 특유의 기질을 가진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아마 제가 만난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워크숍에서는 놀랍도록 비판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수십 년의 가르침에서 왔을지 모르지만, 어떤 이야기든 핵심을 바로 보고 필요한 것을 말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곳에서 그와 좋은 추억이 많았고, 그 어려운 시기에도 또 이후에도 계속 우정 어린 격려를 해 준 것에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배리 같은 사람을 짧은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를 아는 특권을 얻은 모두가 그를 그리워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평론가들은 당신을 카버와 비교하고 또 어떤 평론가들은 치버와 비교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다이벡의 영향을 말했지요. 작품을 쓸 때로 돌아가서, 언급할 만한 작가로는 또 누가 있을까요?
예. 너무 많습니다. 리처드 바우쉬, 스테파니 본, 토비아스 울프, 주노 디아즈, 제인 앤 필립스 등. 스튜어트 다이벡의 The Coast of Chicago처럼 일주일에 한 번은 책장에서 꺼내는 책도 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다이벡의 단편은 무엇입니까?
환상적인 작품이죠. 그런데 왜 그 작품을 선택했는지 궁금합니다. “Pet Milk”는 많은 당신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서사의 층을 결합하고 마지막 단락에 동시에 세 가지 다른 시간의 관점을 제공합니다. 그런 종류의 노스탤지어에 감동하는 편이신가요?
예, 분명히 그런 것도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작품에서 사실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도 좋습니다. 다이벡은 한순간, 그 작은 순간을 너무 아름답게 포착해서 그토록 우아하게 썼습니다. 어떤 면에서 언어와 심상이 한 데 어울려서 거의 전체 작품을 지배합니다. 소용돌이치는 애완동물 우유를 알폰스 왕의 음료에 연결한 다음 다시 마지막에 소용돌이치는 기차의 이미지에 연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시와 같습니다. 그가 소설가이기 훨씬 전부터 시인이었다고 해도 놀랍지 않습니다.
최근 주노 디아즈가 자신의 작품에서 번역되지 않은 스페인어는, 최고의 독자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야 할 작품의 일부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당신의 작품에는 문자로 언급은 되지만 텍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는 되지만 진실은 모호한 사건들—더 좋은 단어가 없어서 빈틈lacunae이라고 부를게요—이 많습니다. 서사에서 이런 비유적인 공백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작품을 끝내고 나면 언제나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남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저도 독자가 만족하기를 바랍니다만, 어떤 것들은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는 것도 좋습니다. 그것은 독자에게, 어쩌면 저에게, 우리 중 누구도 항상 “진실한” 이야기를 알 수 없으며, 언제나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남는 것을 상기하는 제 나름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아술Azul”에서 십 대 교환 학생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부부는 학생이 죽을 수도 있는 여러 가지 나쁜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나 화자인 남편은 너무 사랑스럽고 정직해서 아내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남편을 동정할 것 같습니다. 작품을 쓰는 동안 이 부부가 잘못되리라 항상 알고 있었습니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라도 명확한 것이 있었습니까?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초고는 결국 사고를 포함하지 않아서 화자와 아내를 쉽게 놓아줬습니다. 작품은 여전히 파티에서 끝났지만, 매우 조용하고 거의 명상적인 결말이었습니다. 나중에 여자 친구(지금은 아내)에게 그 작품을 보여준 후에야 결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제 기억에 그녀가 한 말은 “이 부부가 정말로 이렇게 행동하고도 무사하기를 바라나요?”라는 취지였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너무 많은 나쁜 행동과 무책임에는, 상응하는 결과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일단 글을 쓰고 나면 결말을 바꾸는 것을 내켜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깨달았습니다.
보통 작업할 때, 친구나 가족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편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다른 작품들은 어떻게 변했는지 말할 수 있습니까?
아내는 아마 이 시점에서 저의 중요한 독자이고, 기본적으로 아내에게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아내가 뭔가 끝났다거나 준비되었다고 말하면 항상 옳습니다. 실제로 “외출Departure”이나 “코네티컷” 같이 제 단편집의 일부 작품은 아내가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았다면 제 하드 디스크를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일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야 겨우 이해하는 성향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구체적인 예를 또 들자면, 단편집에 포함된 대부분은 아내가 칭찬한 작품이었습니다.
단편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강가의 개River Dog”에서 대학생 화자는 쓰레기 같은 남동생이 동네 소녀를 강간한 것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분명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죠. 작품 속의 많은 화자가 비슷한 딜레마, 즉 그들이 목격한 비극과 범죄에 책임이 없다고 스스로 믿어버릴 수는 없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만약 초안에서 다른 관점으로 썼다면, 왜 그런 식으로 변경했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일부 주변 인물 관점에서 이야기를 덧붙일 생각은 있었지만, 어떤 작품에서도 관점을 바꾼 기억은 없습니다. 저는 일단 어떤 관점에 도달하면 그것을 고수합니다. 작품을 포기할지언정 말하는 시각을 절대 바꾸지 않습니다.
독자들이 재미없어하니, 행동하는 인물보다 관찰하는 화자가 더 많이 등장하면 안된다는 말을 초보 소설가들은 종종 듣습니다. 물론 작가가 이 충고를 따랐다면 위대한 개츠비, 트리스트럼 샌디 또는 앨리스 먼로의 가장 훌륭한 작품은 없었겠죠. 1인칭 관찰자가 당신과 작가 일반에게 유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훌륭한 질문이군요. 종종 학생들에게 똑같은 충고를 해 주지만 물론 저도 항상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작품을 쓸 때 초기 단계에서 많이 고민한 것이 쓸만한 것인지 아닌지 저는 잘 몰라요. 대개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등장인물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등장인물을 괴롭히는지 파악하려 애씁니다. 그리고 종종 작품 속 세계에서 고립되거나 소외되었다는 느낌이 등장인물을 괴롭힌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1인칭 관찰자의 시점은 등장인물 간의 갈등이나, 등장인물이 속한 세상에서 스스로 주변인임을 느낀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프랭크 오코너가 그의 유명한 에세이 “The Lonely Voice”에서 단편소설은 집단에서 소외되거나 배척된 사람을 다루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1인칭 관찰자 시점은 등장인물의 소외감을 강조할 수 있다는 중요한 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위대한 개츠비의 닉 캐러웨이와 같은 인물이 느꼈을 법한 감정 말이죠.
작품에서 특정 주제와 지역이 반복된다는 리뷰가 많습니다. 그것 말고도 작품들 사이에 문장 수준의 공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알렉스라는 이름은 주요 인물과 주변 인물로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그리고 두 명 이상의 등장인물이 도입부에서 “옳지 않다not right”라고 묘사됩니다. 이러한 공통점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입니까?
작품 간에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는 진짜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주제 면에서든 다른 면에서든 서로 간의 공명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옳지 않다”라는 구절이 여러 작품에서 반복된 것처럼, 이러한 공명은 출판된 이후에 사람들이 저에게 말해주고서야 알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순전히 우연입니다만, 어떤 점에는 놀랍지도 않습니다.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너무 많은 이상한 연관성이 만들어지고, 너무나 많은 공통된 주제와 심상이 계속 나타나서 이러한 반복이 불가피한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소설을 쓸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전에 영화 제작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죠. 글을 쓸 때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소설가로서 영화의 언어가 유용할 때는 언제입니까?
이전에 그런 연관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수준에서 제 작업은 영화 제작자의 작업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작품을 단선적으로 쓰지 않습니다. 날 재료를 많이 만든 다음 나중에 모든 것을 한데 모으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 제작자가 돌아가서 영화를 편집하는 것처럼 말이죠. 영화와 영화 제작의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면, 어떤 장면들이 큰 줄기의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는지 생각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기억납니다. 어떤 종류의 조명을 쓸지 음악을 쓸지, 많은 것을 생각한 기억도 납니다. 개별 장면과 전체 이야기를 어떻게 연결할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글을 쓸 때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저는 그저 작은 순간부터 시작해서 쌓아갑니다.
개별 장면을 쓴 뒤에 전체 중 일부로서 수정합니까?
아니요, 실제로 초안은 훨씬 더 선형적으로 썼습니다. 섹션 별로, 챕터 별로, 그러나 개별 챕터에서 여러 가지 다른 장면이나 한 장면을 여러 버전으로 만들기도 하고,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하게 접근하죠. 나중에 전체를 어떻게 배치할지 정합니다.
장편 소설은 잘 되고 있죠? 언제 나옵니까?
출판 날짜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괜찮습니다. 최근에 초고는 완성했고 1월에 최종 원고를 끝내려 노력 중입니다. 곧 볼 수 있을 겁니다. 쓰고 있는 작품을 이야기할 때 꽤 미신을 믿는 편입니다만, 휴스턴을 배경으로 하고 위기에 처한 가족이 등장한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연민, 유머, 그리고 동정심으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많은 작품 속 화자의 입장은 학생들을 보면서 자신의 흘러간 과거를 보는 교육자의 입장과 어떤 점에서 유사합니다. 당신은 창조적 글쓰기 교육자입니다. 교육자라는 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식으로 작업에 영향을 줍니까?
가르친다는 것의 위대한 보상 중 하나는 학생 중 일부가 실제로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지금 초창기 학생 중 일부는 이미 문예 창작 석사 프로그램 학위를 마치고 이제 세상에 나가 작품을 발표하고, 교사 자리를 찾고, AWP 콘퍼런스에 참석하고, 독서 프로그램에 참석합니다. 솔직히 그것을 보는 것은 너무 기쁩니다. 네, 이것은 다소간은, 그들 나이의 저를 기억하고, 그들이 정확히 제가 겪은 것과 똑같은 것을 겪는 것을 보고,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흥분되는지 또 얼마나 무서운지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몇 년간 가르친 것의 멋진 보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노력의 결과를 보기 시작하지만, 또 더 젊은 세대의 작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변해가는 것을 봅니다. 어느새 그들은 당신을 멘토로 보지 않고 친구와 동료 작가로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체로 고무적입니다.
NPR의 “Selected Shorts”에서 그리고 레인 윌슨Rainn Wilson과 에이미 브레너먼Amy Brenneman 등이 참여한 니팅 팩토리Knitting Factory 행사에서, 배우가 당신의 작품을 낭독하는 것을 지켜보셨죠. 자신의 작품이 자신이 아닌 다른 목소리로 낭독되는 것을 듣는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완전히 초현실적이었습니다. 할리우드의 배우 행사가 특히 그랬습니다. 수년간 존경한 에릭 스톨츠나 십 대 시절 TV로 본 저스틴 베이트먼이 제 작품을 낭독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매우 교육적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이 사람들이 전문가라고 불리는지 아실 겁니다. 저스틴 베이트먼이 제 단편집의 표제작을 아주 유머러스하게 읽은 것을 기억합니다. 이전에는 결코 유머러스하게 생각하지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곳에서 멈추고, 적절하게 전달 방식을 제어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얻는지 깨달았습니다. 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제 작품을 재해석 한 다른 사람을 봐서 멋있었습니다.
과거 소설가이든 현재 소설가이든 꼭 읽을 가치가 있음에도 읽히지 않는 작가에는 누가 있을까요?
가장 좋아하는 단편 소설집인 마크 코스텔로의 The Murphy Stories와 스테파니 본의 Sweet Talk는 모두 절판되었습니다. 만약 구할 수 있다면 꼭 읽어보길 바랍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훌륭한 단편집이 몇 권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로리 오스트런드의 The Bigness of the World와 로라 반 덴 버그의 What the World Will Look Like When All the Water Leaves Us 등은 정말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댄 숀, 찰스 담브로시오, 줄리 오린저, 이창래 등의 저명한 작가는 항상 권하고 싶습니다.